깊은 잠에 빠진 한국오케스트라에 혼불로 새역사의 창을 열었다

 

탁계석(음악평론가)

 

정말 행복한 밤이었다. 단원, 지휘자, 관객의 혼연 일체가 만추의 깊은 가을밤을 적셔 영혼을 깨웠다. 아니 깊은 잠을 자고 있던 한국오케스트라에 혼불로 가슴을 달군 뜨거운 밤(제2회 부산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공연 11월 8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이었다.

 

평생 3,000회 이상의 공연을 본 평자로서도 관현악에서 '올 브람스'레퍼토리는 처음이다. 그런 만큼 지휘자 오충근의 자신감과 의욕은 충만했다. 그가 꿈꾼 부산의 클래식 부활은 정면승부요 진검승부 그 자체였다.

그것은 어쩌면 대중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얕은 재주를 부리는 지휘자가 클래식을 하향평준화 시켰다는 비판적 시각을 침묵으로 항변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이 도시 저 도시에 상업적인 브랜드를 띄워 놓고 마녀사냥 하듯 돈벌이하는 오케스트라와의 차별화를 선언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 그렇게 해서 순간의 위안을 될지는 모르지만 '아시아의 창 부산'은 열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은 옳았다.

대규모편성의 오케스트라는 무대를 꽉 채웠고 객석도 만석이다. 때마침 리모델링으로 새 단장한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은 시민들의 자긍심을 느끼리만치 훌륭했다.

 

첫 레퍼토리' 대학축전 서곡'은 이런 분위기에 썩 잘 어울려 청중을 고조시켰다. 이날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인 데이비드 김의 '브람스 바이올린협주곡'은 내공이 쌓인 브람스였다.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종신 악장으로 한국 오케스트라의 표상이 되어 있는 그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지 위해 얼마나 엄격한 삶을 살아왔을까.

가슴 깊이 파고든 영혼의 노래였다. 그 단단한 열매의 빛이 브람스 특유의 서정을 눈부시게 노래하지 않던가.

필자에겐 30여년전 유진 올먼디의 내한 공연을 본 탓에 감회가 남달랐다. 후반 브람스 교향곡 제 1번은 이례적으로 데이비드 김이 악장 자리에 앉아 일체감은 절정에 달했다.

사운드의 충만감은 도저히 일시에 모인 오케스트라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외래 초빙된 객원 단원들로 앙상블이 긴밀했고 오지휘자의 지휘엔 어느새 원숙감이 묻어나 보였다. 단원들에게 보내는 신호에도 여유가 넘쳤고 암보로 할 만큼 그는 자유자재로웠다.

 

깔깔거리고 웃는 프로그램이 방송 프로그램의 본질인 냥 교양을 잃고 있는 한국 방송의 상황에서 지역 민방 KNN이 음악문화를 선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허남식시장을 비롯해 정치인, 경제인, 사법인 등 오피니언들이 대거 참석해 시민과 함께 문화를 향유하는 분위기는 침체에 빠져있는 '부산 클래식'의 전망을 밝게 했다.

콘서트 후 축하연에서 비평가협회가 '교향시 한강' (임준희 작곡)을 헌정한 것도 부산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에 거는 기대가 아닐까 싶다. 연주회는 많지만 이처럼 자생의 스타 예술가를 키우려는 노력은 일찍이 없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방향이 제시 될 것 같다.

부산이 ‘아시아의 창’이 되려는 꿈이 지휘자 한 사람의 꿈이 아닌 모두의 것임을 공유한 음악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