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거인 난곡(難曲) 도전으로 관객 키우고, 실내악으로 정신 가치 확인시켜


[웰빙코리아뉴스] 탁계석 음악평론가
 

 
오케스트라가 도시의 자존심과 상징에 대입되는 것이 유럽권 문화다. 화려한 도시의 빌딩이나 도시 크기가 전부가 아닌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정신문화의 압축이 오케스트라를 통해서 가능하고 표출되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와 문화, 전설과 민요 등이 녹아든 총체의 음악으로서 오케스트라 음악이 갖는 고전(古典)의 힘은 실로 위대하다. 그것은 어느 한 시대 국왕보다 더 높은 명성, 더 오랜 영속성의 존재 가치를 갖고 있다.


콘서트 홍보에 “인간이 도달하는 가장 높은 곳, 그 숭고한 음악의 순간을 거인(巨人)에서 만날 수 있다”는 카피가 눈길을 끌었다.

그러니까, 부산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제 8회 정기공연에 ‘말러 거인(巨人)’으로 도약의 시험대에 섰다. 어찌보면 말러의 작품 난이도 보다 더 두려운 것은 청중이다. 작품을 외면하거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그것이다.

그러나 10월 31일 저녁 부산문화회관대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에게 말러는 반전이었고, 일부 청중들이 기립 박수를 칠만큼 감동의 전율이었다. 이처럼 청중의 귀를 높이고, 난곡(難曲)을 소화해낸 자신감은 단지 무대위의 오케스트라나 지휘자 능력의 성과만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오랫동안 중앙무대에서 말러시리즈가 열풍이 불었지만 타도시들이 앞다투어 작품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때문에 이번 말러 거인 연주는 그간 '아시아의 창(窓) 부산'이란 슬로건을 내건 오충근 지휘자의 부산월드필이 또한번의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말러를 해 보면 모든 것이 드러난다. 현의 섬세함과 고음부의 테크닉, 목관과 관악, 현악의 조화, 튜티에서 뿜어내는 사운드 중량 등이 긴 연주 시간 못지않게 흐트러지 않는 긴장과 몰입을 필요로 한다.

월드필이 청중을 키웠고, 청중이 월드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문화가 양적 팽창도 중요하지만, 관객 눈높이에 맞추는 해설음악회도 필요하지만, 정면 승부수를 던지며 정통성을 세워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것이 지름길인가를 보여준 음악회였다.

피에르네(G. Piern)하프 협주곡을 협연한 곽정의 순서도 흔치 않은 레퍼토리로 음악이 주는 포근함을 안겨주었다. 말러의 거창함에 대비되는 선곡이어서 조화로웠다. 서곡은 대만 작곡가 리체이(Lee Che-Yi)를 통해 이 오케스트라가 위촉해 만든  ‘아시아의 창(窓- 'Windows of Asia' Overture )은 가히 주제곡이라 할 수 있겠다. 각국의 민요가 메들리로 들어 있는 만큼 아시아의 동질성을 느낄 수 있었다. 큰 스케일과 박진감과 서정성이 잘 조화된 명곡이다.


실내악으로 정교함과 최고의 가치 내면화 필요성 확인  

동시에 이튿날 오충근 지휘자의 해설로 첫 출발을 한 ‘실내악의 초대’는 내한한 연주가들에게 더욱 강한 음악적 연대감을 형성한 기획이었다. BWPO가 안정권에 들어가 이제사 여력을 만들어  실내악을 통한 음악의 내적 성장을 보여준 기대의 프로그램이었다.

청중의 진지함과 호응을 보면서 부산이 문화의 불모지라는 딱지가 언제 붙어 있었던가? 적어도 이순간 만큼은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사람들과, 돈이 되는 것만 문화라고 여긴 사람들이 대한민국을 좌초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의 예술적 에너지가 승화한 실내악의 가치를 살린 것은 부산 문화의 희망이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하듯이 클래식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문화는 그저 혼돈만 부추길 뿐 아니겠는가.

BWPO의 창단에서부터 지원한 조광페인트 고(故) 양성민 회장님에 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위한 헌정은 가슴을 뭉쿨하게 하였고. 후반부의 리체이 현무-(Dancing Strings) 등의 작품들은 우리 창작음악에 방향성을 제시할 만큼 명곡들이었다. 현대적인 감각과 연주가와 청중이 모두 공감하는 작품성의 요구가 작곡가의 엄청난 작품량과 편곡 등, 내공( 內工)이 빚어낸 결과로 보였다.


고전과 현대가 공존하며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예술교류가 확충되면서, 서구를 모방하고, 서구를 동경하던 시각(視覺)의 편향성도 극복되지 않겠는가. 이제는 우리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주체성과 정체성을 확립해야함을 이번 양일간의 콘서트는 말해주었다. 

기초도 쌓지 않고, 수천억을 퍼부어 창조경제, 문화융복합의 모호성을 외치는 것보다 클래식이란 인내의 산물임을 확인시켜준 참으로 의미있는 콘서트였다. 부산은행의 스폰서지원과 KNN방송의 성원도 관객에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탁계석 음악평론가/웰빙코리아뉴스(www.wbkn.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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