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협연, 오충근/부산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회
교류로 가까워지는 클래식 음악 도시의 꿈
10월 30일 부산문화회관 대극장
부산월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BWPO)는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 단원과 국내 단원의 연합 오케스트라다. 2009년 제1회 콘서트 이후 예술감독 오충근이 지휘봉을 잡고 매년 가을 부산에서 공연했다. 부산시와 KNN방송이 공동 주최한 이번 9번째 무대에는 대편성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채웠다. 콘서트마스터에 콘도 카오루(도쿄 필 악장)를 비롯해 비올라 수석 홍웨이 황(로열 필·런던 필 객원 수석), 클라리넷 수석 요코카와 세이지(전 NHK향 수석), 오보에 수석 모가미 타카유키(도쿄 심포니 단원), 호른 수석 요시나가 마사토(뉴 재팬 필 수석) 등 아시아의 내로라하는 단원들이 포진해 있었다.
공연은 BWPO의 위촉으로 하순봉이 작곡한 ‘아시아의 창 서곡 음곡악(音曲樂)’으로 시작됐다. 요요 마의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었다는 작곡가의 말대로 다분히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작품이었다. 어두운 여명을 연상시키는 묵직한 선율과 처연함이 교차하고 점차 웅장해지며 판소리 고수를 연상시키는 북채의 타격이 이어졌다. 비올라와 첼로의 중저음이 강조되고 휘모리장단으로 빨라지는 곡을 들으며 비발디의 협주곡이 떠올랐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이어졌다. 젊은 협연자 김재원은 부산 출신으로 현재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연주자과정에 재학 중이다. 노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는 1757년 카를로 베르곤지 바이올린으로 연주했다. 악기의 울림은 탁월했다. 북유럽의 오로라 같은 신비함이 무대 위로 퍼졌다. 오충근 특유의 호쾌함과 묵직함이 섞인 반주 위로 바이올린이 명확하게 짚고 나아갔다. 침착하고 냉정한 연주는 시벨리우스 내면의 푸른 불꽃과 어울렸다. 2악장에서 김재원은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결을 세웠다. 오케스트라는 광활한 대지를 연상시켰다. 극적인 절정 뒤엔 다소 숙연해지며 실낱같은 고음으로 흐름을 유지했다. 독주자의 체력이 요구되는 3악장에서는 힘의 안배가 돋보였다. ‘바이올린의 재원(才媛)’ 김재원의 잠재력을 확인한 무대였다.
마지막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였다. ‘영웅’은 비올라와 첼로의 흑갈색 중저음으로 시작해 마디마다 악센트를 주며 거대한 스케일과 다이내믹을 표출했다. ‘영웅의 적’에서는 수수께끼 같은 목관 악기들의 지저귐이 진중한 현과 대조를 이뤘다. ‘영웅의 연인’에서 악장 콘도 카오루의 바이올린이 요염함과 고결함을 동시에 표현했다. 트럼피터 3명이 퇴장해 무대 뒤에서 불며 타악기와 함께 ‘영웅의 전장’을 고조시켰다. 오충근의 스타일대로 강렬하게 표현했다. 크게 가져가는 총주는 자신감이 넘쳤다. 여기서 오충근은 지휘봉을 놓치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비올라 수석 홍웨이 황이 순발력 있게 자기 앞에 떨어진 지휘봉을 집어서 전달했다. 짧은 순간 무대는 바통을 건네는 선수들의 육상경기장이 됐다. ‘영웅의 업적’은 화려한 금관과 팽팽한 집중력의 현이 함께했고, ‘영웅의 은퇴와 완성’은 2대의 하프가 울리는 가운데 현들이 황홀했다.
부산역 부근에 부산 오페라하우스가 12월에 첫 삽을 뜬다. 부산시민공원 내 부산국제아트센터 역시 내년 상반기 착공을 앞두고 있다. 뛰어난 단원들과 함께 연주하는 BWPO의 공연은 세계를 향한 음악도시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의 꿈을 구체화할 수 있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왔다. 예산이 문제겠지만, 향후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교류의 폭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KNN